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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의 어느 날Daily 2022. 11. 23. 15:58반응형
때는 2020년 늦여름이었다. 낮에는 햇빛이 쨍쨍해서 조금만 걷다 보면 땀이 나고 저녁에는 습도 높은 미지근한 공기가 가득한 여름날. 직장에서 만나 가까워진 사이가 된 언니와 처음으로 2박 3일을 여행하기로 했다. 여름엔 역시 바다지! 하며 동쪽 끝자락쯤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일찍부터 여행 짐을 싸는 걸 좋아하는 나는 여행 이튿날부터 여벌 옷과 화장품을 챙겼다. 그리고 놀 때 휴대폰이나 작은 물건들을 넣기 좋은 작은 크로스백도 함께 짐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에어팟도 넣었다.
사실 언니가 직접 운전해서 갈 것이기 때문에 여행 기간 동안 대중교통을 탈 일은 없을 예정이었다. 보통 이동할 때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많이 듣곤 했지만 나는 바닷가에서 한창 놀다가 나와, 파라솔 밑에 앉아 에어팟을 끼고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에어팟을 챙겼다. 에어팟을 끼고 노래를 듣는 내 멋진 모습을 생각하고 여행 짐 자크를 잠갔다.
그리고 여행 당일. 언니와 집 근처에서 예약했던 렌터카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당시 장롱면허인 나에게 운전에 대한 큰 관심을 불어 일으킨 건 당연코 언니가 운전하는 모습을 본 그날이었다. 나와 대화도 하고 커피도 중간중간 마시며 너무나 능숙하게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보니 멋있어 보였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편안하게 노래도 틀고 이야기도 나누며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일깨워주었다. 초행길이니 초반에 내비게이션 좀 봐달라는 부탁을 나에게 했지만 면허 따고 운전한 적이 없던 나는 않으니 당연히 내비게이션을 볼 줄도 몰라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그렇게 3시간 조금 넘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힘들지 않냐는 내 물음에 운전이 재밌다며 함께 이야기하며 와서 좋았다는 언니의 말에 안심은 했지만 나도 나중에 운전을 꼭 배워서 언니랑 놀러 갈 때 내가 운전해서 데려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언니가 이 근처 오면 자주 간다는 대게집에서 대게 몇 마리와 내장 볶음밥까지 먹고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바다에서 물놀이하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챙겼던 작은 크로스백에 에어팟을 챙겨 나갔다. 반짝이는 모래사장에 꽂혀있는 무수히 많은 파라솔 어느 쯤에 가져왔던 작은 짐들을 두었다. 푸른 바다 앞에서 사진도 찍고 맨손으로 물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도치는 바다에 들어가 수면이 낮은 쪽에 앉아서 쓸려 나오는 모래와 바다 수평선을 번갈아보며 바다 구경도 원없이 했다. 한참을 놀다 보니 슬슬 배고파지는 시점에 서로 동시에 쳐다보며 밥 먹으러 가자 했다. 근처 마트에서 고기와 야채, 채소, 소시지를 구매해서 예약했던 펜션 앞에서 우리만의 바베큐 파티를 했다. 역시나 술은 빠질 수 없어서 맥주도 몇 캔 깠다. 마침 해가 지고 있던 시간이었는데 하늘도 핑크빛으로 물들고 알콜도 들어가고 함께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로 좋았다. 저녁에는 날씨가 제법 좋아서 별구경도 할 겸 해변가 쪽으로 나갔다.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살짝 덥기는 했지만 짭짤한 바다 냄새를 맡으며 시원한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이렇게 별이 많나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별들이 검은색 하늘에 박혀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별 사진을 찍어야한다며 언니는 별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카메라도 준비성 있게 챙겨 왔다. 카메라로 찍으니 내가 볼 수 없는 작은 별들까지 다 담기는 게 신기했다.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도 빠질 수 없다 하며 슈퍼에서 작은 스파클라도 사와 별도 그리고 하트도 그리며 사진도 남겼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둘째, 셋째날에는 처음 하는 서핑도 하고, 아기자기한 카페도 가고, 낙산사도 들러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짐은 미리 싸지만 여행 갔다 오면 여행 짐이 한참 동안 문 앞에 굴러다닌다. 굴러다니는 짐을 일주일이 지나서야 꾸역꾸역 정리했다. 언니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바로 코로나 확산되었다. 전국적으로 비상이 났고 재택근무를 막 시작했다. 그 이후에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와 외출할 일이 많지 않아 재택근무여서 회사로 이동할 일이 없고 집에만 있었다. 이동할 때 주로 에어팟을 들고 다니며 노래를 듣곤 했는데 이동할 일이 없으니 에어팟을 쓸 일이 없었다. 가끔 자취방에서 본가로 갈때 택시를 타곤했는데 이때마다 에어팟을 찾긴 했지만 금세 찾아지지 않아 '어딘가 있겠지~ 그리고 가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으니까~' 하며 찾을 생각을 안 했다.
몇 주가 지나고 여행 다녀온 지 삼개월이 거의 넘어갔던 날, 이동시간이 길 것을 예상하고 에어팟을 꼭 찾아야 했다. 아무리 찾아도 절대 보이지 않았다. 작은 자취방에서 없어진 거라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어팟 잃어버렸을 때 찾는 기능도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무용지물이었다. 너무나 에어팟이 찾고 싶어서 네이버에 잃어버린 물건 찾는 비법을 찾아서 기억을 더듬어 보며 여러 시도를 했지만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가방걸이에 걸쳐져 있는 여행가방을 보며 언니랑 놀러 갈 때 마지막으로 에어팟을 챙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짐을 쌀때 해변에서 에어팟을 끼고 노래를 듣고싶었던 내가 떠올랐다. 부랴부랴 여행가방과 당시 챙겼던 작은 크로스백도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챙기고 놀러가서 잃어버린 걸까? 해변가에서 에어팟을 끼고 노래를 들으려고 계획했지만 노느라 까먹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날 가져갔던 크로스백에서 에어팟도 꺼내지 않았다. 바다에서 놀 때 빼고는 에어팟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건지 알 수 없다. 파라솔에 두었던 짐에서 누가 에어팟만 쏙 빼간 걸까? 잃어버리고 한참 뒤에 필요할때 찾는 나도 참 웃기고 재밌다. 1년동안 에어팟을 찾는다고 새롭게 구매도 하고 있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찾지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2세대 에어팟을 구매했다. 그 이후에 에어팟만 보면 언니와 함께했던 2020년 여름의 여행이 생각난다. 잃어버린 에어팟은 너무 아쉽지만 언니와 함께했던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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