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모르는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보기"의 글을 작성해봅니다.
→ 아파트 옆집 사람, 편의점 직원, 항상 조용한 직장 동료 등
1. 그녀(할머니)의 이야기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젊은 아가씨가 있다. 요즘 기억이 흐릿해져서 얼굴을 헷갈릴 때가 많다.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본 건 관리실에서였을 거다. 그날은 버스에서 내린 뒤, 손에 있어야 할 작은 가방이 없다는 걸 깨닫고 한참을 멍하니 섰다. 휴대폰도 그 안에 있었는데… 휴대폰을 잃어버리니 연락할 방법도 없고, 어디다 신고해야 하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결국 관리실로 갔다. 내 머리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는데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됐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이야기한 것 같다. 관리실 직원이 이것저것 확인하는 동안 뒤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은 이런 사소한 일에도 내가 너무 많은 사람을 번거롭게 하는 건 아닌지 자꾸 걱정이 된다.
며칠 후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아가씨를 다시 봤다. 아니, 같은 사람인지 닮은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뭔가가 익숙했다.
그날따라 참 예쁘게 꾸미고 향기까지 은은하게 나더라. 나도 젊었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어떤 향수 뿌리고 외출할지 고민하는 장면이 잠깐 겹쳐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활짝 웃으며 “아이고, 예쁘네” 하고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아가씨가 내려간 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딸이 오기로 했던 날이었나? 아니면 이미 다녀갔던 날이었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뒤섞여 도무지 맞춰지질 않는다. 불안한 마음에 제자리 걸음을 해보며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괜히 마음이 불안해서, 발끝이 가만히 있질 못하고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며칠 뒤 퇴근 시간 무렵, 다시 그 아가씨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서 본 사람인지, 내가 인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모르는 사람인 건지…
분간이 안 됐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 돌아서서 걸어가다 보니 며칠 전에 내가 말을 같이 했던 사람 같기도 하다. 잘은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날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을 눌렀다. 문이 열리니 우리가 바로 근처 호수에 사는 이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웃이라면… 내가 지난번에 못 알아본 걸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자주 집에 온다. 딸은 집에 오면 오면 “엄마, 요즘 더 깜빡하네” 라고 웃으며 말한다. 나는 웃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꾸 겁이 난다.
딸이 돌아가고 나면 집이 그렇게 넓고 조용할 수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현관문을 열어놓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마주칠때마다 긴장된다. 딸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사람도 있을텐데, 그들을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스친다.
2. 나(젊은 아가씨)의 이야기
가끔씩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분이 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보다 조금 더 연세가 있어 보였다.
그분을 처음 본 건 내가 이사 온 날, 관리실에서였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마음이 급한데, 그분이 관리인 앞에서 물건을 잃어버렸다며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저 시덥잖게 느껴졌고, 내 차례가 한없이 늦어지는 게 속이 상했다. 알고 보니 버스에 작은 가방을 두고 내렸는데 그 안에 휴대폰이 들어있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관리인은 그 일을 처리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가 아마 그 분과의 첫 만남이었을 거다.
얼마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분과 다시 만나게 됐다. 내가 한껏 꾸미고 향수까지 뿌린 날이었다. 나를 보기 전부터 찡그린 얼굴이었는데,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젊고 예쁘다며 칭찬을 쏟아냈다. 잘 모르는 사이라 조금 머쓱했지만, 좋은 말이니 그냥 기분 좋게 넘어갔다.
나는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가지고 집 근처를 벗어나고 있는데, 밖에 서있는 그 사람을 발견했다.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었고,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신경 쓰였다.
며칠 후, 퇴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그분을 마주쳤다. 여러 번 본 얼굴이라 나는 이제 확실히 기억하는데, 그분은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전혀 모르는 사람 대하듯 아무 표현 없이 그냥 지나갔다. 나 역시 인사성이 밝은 편은 아니라 애매한 마음으로 그냥 내 길을 갔다.
그 후에도 자주 마주쳤다. 주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났는데, 어느 날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을 눌렀고, 심지어 바로 근처 호수에 사는 이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더 어색했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어야 했나, 꾸몄던 날과 달라서(=쌩얼) 못 알아보시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행동들, 어눌한 말투, 그리고 아주 짧게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분은 약간의 치매 증상이 있는 어르신이었다는 걸. 나는 기억하지만, 그분은 매번 처음 만나는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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