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들이 유년기의 작은 일화를 생생하게 이야기할 때, 나는 내 안에서는 떠오르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
어느정도 머리가 큰, 중고등학교 이후의 일상의 대화나 몇 해 전의 풍경, 그때의 감정까지는 세세하게 남아 있다.
흐릿하다 못해 지워져버린 어린 시절과 선명한 현재 사이의 간극이 크다.
인사이드아웃에 나오는 기억 저장소처럼, 내 어린 시절의 기억 구슬들을 모두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런데도 희미한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남아 있는 말이 하나 있다.
어릴 적 엄마는 나와 동생의 손을 잡고 사람 많은 곳을 데리고 다녔다.
시장, 지하철역, 놀이공원… 복잡한 인파 속안에서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빠짐없이 당부하곤 했다.
“엄마 손 놓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누가 같이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지 말고.
엄마 전화번호 알지? 알려주고 전화해. 절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엄마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따뜻했다.
마치 떨어져 있어도 나와 동생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처럼, 어린 나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한 번은 잠깐 방심하는 순간, 엄마 손을 놓친 일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홀로 남은 나는 자리에 서서 울며 엄마를 기다렸다.
어떤 어른이 다가와 안내센터로 가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따라가지 않았다.
“우리 엄마가 따라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했어요.”
어린 나는 그 말만 하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때의 나는 울면서도 엄마의 말을 끝까지 들었고, 다행히도 엄마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 기억은 그냥 어린 날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말이 나를 지켜주는 약속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많은 기억은 잊혀졌지만, 엄마의 그 목소리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 내 기억 속 가장 오래되고 기억에 가장 남는 말은 그 한마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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