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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아플 때 기록하는 곳 2023. 11. 12. 22:13반응형
느지막이 늦잠을 자고 일어난 일요일 점심.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외출 준비를 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쌓여있던 설거지까지 하고 나갔다 오면 집에 돌아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아 싱크대로 향했다. 서둘러 끝내려는 마음에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방금 전에 썼던 유리컵을 들고 수세미로 힘차게 닦으려는 순간 '와드득'. 왼손에 잡고 있던 유리컵이 세 덩이로 쪼개졌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깨진 유리 조각에 베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던 물에 피를 씻었다. 이제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했더니 피가 뚝뚝뚝 떨어졌다. 상처의 깊이를 볼 수 없었다. 계속해서 피가 계속 흘렀다. 그 잠깐 사이에 내 발밑은 핏물이 가득했다.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제야 손가락 끝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이게 다 내 피야?' 내 손에서 계속해서 떨어지는 피를 보며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참을 수 없는 따가움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지혈을 해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깨끗한 수건이나 거즈를 찾을 수가 없이 '어떻게 해 어떻게 해'를 반복했다. '나 좀 도와줘! 피가 너무 많이나..!'라고 있는 힘껏 외쳤다. 다른 방에 있던 남자친구를 급하게 불렀다. 남자친구도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는 피의 양에 놀라서 바들바들 떨었다. 상비약 통에 있던 거즈를 찾아서 지혈을 시작했다. 상처에 천이 닿고 압력을 주는 순간 더 아파왔다. 그 순간에도 피는 내 허벅지 위로 뚝뚝 떨어졌다. 거즈는 순식간에 빨간색으로 물들여졌다. 너무 무섭고 아파서 울음이 터졌다. 진통제 2알을 먹고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작은 미동에도 상처가 아려왔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혹시나 잔여 유리조각이 있을까 엑스레이도 찍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지혈도 어느 정도 됐고 고통이 익숙해진 건지 마음이 진정됐다. 이제는 소독이나 빨간약을 바르고 집에 돌아갈 줄 알았다.
의사 선생님이 오고 나서 상처를 보더니 간호사분들에게 이것저것 준비를 시켰다. 간호사 한 분이 나에게 천 뭉텅이를 하나 주면서 꼭 잡고 있으면 그나마 버틸만할 것이라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꿰매어야 하나요?' 물어봤다. '당연히 봉합해야죠. 좀 아플 거예요. 마취 주사가 많이 아파요.' 진정되었던 심장이 다시 쿵쾅쿵쾅 거리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소독을 하고 마취주사를 상처부위로 4 바늘을 찌르는데 베이고 나서보다의 고통보다 더 컸다. 아직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참을 수 없는 고통. 간호사분이 준 천 뭉텅이를 강하게 누르고 고개를 푹 숙이고 호흡을 다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마취를 하고 봉합을 시작하는데 바늘이 내 손 끝을 통과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파요.. 아직 마취가 덜 된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리니 마취가 잘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고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마취약을 두방 투하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차마 봉합하는 장면은 볼 수가 없어 다른 쪽을 보고 좋은 생각 행복한 생각만 했다. 몇 분 뒤 퉁퉁 부은 내 새끼손가락에 4-5땀의 실밥을 볼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2주 동안은 봉합 부위를 움직이지 않고 물이 절대 닿지 않도록 당부했다. 응급실이여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온 분들, 다리가 부러진 분들 나보다 더 심하게 다친 사람들이 같이 있어서 아픈 티를 더더욱 낼 수 없었다. 눈물만 계속 흘렀다. 치료실을 나오고 나서 남자친구 얼굴을 보고 속에서 참았던 울음과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라고 힘든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남자친구가 있어서 다행히었다. 혼자 있었다면 지혈조차 혼자 할 수 없었을 것 같아 119를 불렀겠지. 고마움과 안도감에 한참을 기대서있었다.
이제 그 2주가 다 지나가고 있다. 내일은 실밥을 푸는 날이다. 아직도 스치기만 해도 아프고, 손끝의 찌릿찌릿한 고통이 지속되고 있지만 조금씩 옅어져가고 있는 것 같긴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감고, 외출준비를 하는 과정과 할 수 없는 일들, 취소한 약속들 등 불편한 일들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힘든 2주가 지나갔다.
유리를 다룰때는 항상 조심하고, 특히 두께가 얇은 유리는 더더욱 신경 쓰자는 삶의 경험을 하나 더 배웠다고 생각한다. 작년과 올해 의도치 않은 사고나 상처가 많이 나고 있다. 작년에는 교통사고 2번에, 올해는 39도의 고열과 독감 그리고 손가락 베임까지. 주변에는 아홉수라고 놀린다. (ㅋㅋㅋ) 29살이 맞긴 하지만 큰 사고 없이 이 정도 선에서 지나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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